
호세아 - 하나님의 사랑의 줄
오늘은 호세아서를 보겠습니다.
이 책을 기록한 사람은 선지자 호세아입니다. 호세아와 여호수아는 원래 같은 이름으로, 그 뜻은 ‘구원’입니다. 이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온 세상을 폼은 대표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그는 아모스와 동시대 사람으로 미가보다는 연장자이고, 이사야와는 비슷한 연배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사역을 하면서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했지요. 호세아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지켜보며 통곡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남유다에게 경고를 주는 데 사용됩니다. 호세아서의 목적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백성이 돌이켜 주님께 돌아올 것을 말씀하시고, 그렇게 하면 주님의 축복으로 그들이 회복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특이하게도 하나님께서 호세아 개인의 가정을 예증으로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십니다.
1장-3장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호세아가 결혼하고, 세 자녀를 낳는 내용입니다. 호세아의 아내 고벨은 부정한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둘 사이에 태어난 세 아이들의 이름을 당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의미를 담아 짓게 하십니다. 첫째 아이 ‘이스르엘’은 ‘하나님께서 흩어 뿌리신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심각한 우상숭배로 하나님이 심판을 받아서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당하고, 포로로 잡혀가 온 앗수르 제국에 흩어져 살게 됩니다. 둘째 아이 ‘로루하마’는 ‘긍휼이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셋째 아이 ‘로암미’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에서 ‘로_’는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이라 할지라도 용서하고 회복시킬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세 아이의 이름을 다시 바꾸라고 하십니다. 첫째 ‘이스르엘’은 ‘이스라엘’로, 둘째 ‘로루하마’는 ‘로하마’로, 다시 말하면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던 자에서 긍휼히 여김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셋째 ‘로암미’는 ‘암미’로, 다시 말하면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가 내 백성이라는 뜻으로 바꾸신 것입니다.
2장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의 백성들을 회복화시는지 그 과정을 말해줍니다. 6절에 하나님께서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제멋대로 살아가면 하나님은 그들로 돌이키도록 가시로 그 길을 막으십니다. 찔리고 아프고 환경적으로 힘든 고통 때문에라도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보여줍니다. 담을 쌓아서 더 이상 갈 길이 없는 데까지 가게 하셔서 결국 절망 속에서 주의 은혜를 구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4,15절에 하나님은 백성을 광야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비로소 포도원을 그에게 되돌려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으로 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광야는 힘들고, 두렵고, 불안하고, 방황할 수밖에 없는 거친 땅입니다. 안정된 것이 하나도 없는 곳이지요. 그러나 그곳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위로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아골 골짜기는 ‘환난의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주를 떠나서 제멋대로 살며, 방황하며, 환난 속에 살지만 긍휼히 여기셔서 절망을 놀랍게도 소망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로 바꾸겠다고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장가드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말씀하심으로 사랑과 은혜와 긍휼로 말미암은 결심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품으시고 회복시키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을 떠나 주변국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해서 책망하시면서 남편을 버리고 떠난 아내와 똑같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호세아의 결혼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4장-14장은 하나님의 모습을 세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4장-7장은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주께서 지적하시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살아야 된다고 촉구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난 삶에서 돌이켜 돌아오며 하나님을 알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7장에서는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의 죄의 상태를 네 가지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달궈진 화덕’과 같다고 하십니다. 이는 악한 생각으로 가득 찬 상태를 말해줍니다. 둘째는 ‘뒤집지 않은 전병’과 같다고 하십니다. 빵을 한쪽으로만 구우면 그쪽은 타버리고 다른 쪽은 덜 익어서 못 먹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그런 상태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세 번째로 ‘어리석은 비둘기’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비둘기는 원래 자기 집을 잘 찾아가지만 어리석은 비둘기는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합니다. 하나님께로 가야 하는데 이방 국가들에게로 간 이스라엘을 잘 보여주는 비유입니다. 네 번째는 ‘속이는 활’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처음에는 과녁을 잘 맞추었지만 마지막에는 엉뚱한 방향으로 쏘는 활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지 아니하고 이방을 향해 나아가는 이스라엘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셔서 이들이 모든 죄를 다 회개하고 돌이켜 돌아오기를 요청하십니다.
또 8장-10장은 하나님이 공의로우시다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죄의 결과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치 그들의 모든 상태를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두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헛된 것을 심었더니 더 큰 헛된 삶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던 백성들에게 주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것이고, 두 마음이 아닌 오직 한 마음을 품기를 원한다라고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끝부분인 11장-14장까지는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을 떠난 삶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그들을 대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의 자녀들에게 걸음마를 가르치고, 넘어지면 팔로 안아서 치료해 주시는 부드러운 사랑의 아버지로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화를 내시기보다는 함께 마음으로 아파하시며 돌봐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로 더 빠져들어 점점 더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개하고 돌이켜서 주께로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큰 축복과 풍성한 열매로, 견고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우리를 회복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서는 끊임없이 범죄한 백성을 일방적으로 사랑하셔서 계속 기회를 주시고, 용서하시고, 회복하시며 결국에는 큰 축복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홍성건 목사님의 말씀관통 100일 통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