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 하나님의 심장이 없는 선교사
오늘은 요나서를 보겠습니다.
요나서는 기록된 목적이 아주 다양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열방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둘째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의지하는 것이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모든 나라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기를 원하시는 것이지요.
비록 심각한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불쌍히 여기셔서 모든 죄를 사하시고 구원을 주신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으로 말하는 아합이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금식하고 회개하며 주 앞에 나아가 간절히 은혜를 구하자 그에게 내리려던 모든 심판을 그의 아들 대로 연기하셨습니다. 만일 아합의 아들도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나아갔다면 하나님은 심판을 또 연기하시고, 그 죄를 완전히 소멸시키셨을 것입니다. 아무리 큰 죄라 할지라도 삼사 대 이상은 가지 않도록 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또 요나서 안에서 볼 때 중요한 한 가지는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은 선교사에 대한 것입니다. 선교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선교지의 강퍅한 종족들도 아니고, 견디기 힘든 기후나 열악한 음식 등 물리적인 환경도 아닙니다. 선교에 대한 지식이나 전략의 부족이나 재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장이 없는 선교사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요나는 바로 그런 선교사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공의로 나갔습니다. 니느웨는 심각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마땅히 심판 받고 멸망 당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그는 여겼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용서하기를 기뻐하시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을 때 그들이 듣고 회개하고 돌이킨다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들을 용서하실 것을 알았기에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멀리 떠난 것입니다. 요나는 헌신도 되어 있고, 하나님의 열정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뜨거운 그분의 심장을 갖지 못하고 공의만 부르짖는 선교사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요나서 안에서 몇 가지의 내용들을 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첫째는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분이시다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장 4절에 요나가 불순종하여 멀리 도망갈 때 그가 가는 바다 위에 ‘큰 바람’을 준비해서 내리치셨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요나가 니느웨와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고자 욥바 항구에 갔을 때 “마침 배가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하며 기분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큰 폭풍을 준비해서 요나가 타고 있는 배를 흔드셨습니다. 요나가 바다 속으로 빠졌을 때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그를 삼키게 하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4장 말씀에 보면 ‘박 넝쿨’을 준비하셔서 요나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십니다. 동시에 ‘벌레’를 준비하셔서 박넝쿨의 잎사귀들을 순식간에 다 갉아먹게 하셨습니다. 또한 4장 8절에는 ‘뜨거운 동풍’도 준비하셨습니다. 요나는 정신이 혼미해져서 몹시 화를 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일을 계획하시면 그 뜻에 따라 순종하는 모든 사람의 길에 그 일을 충분히 감당하도록 준비하여 공급하십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여 최선을 다하면 환경과 사람과 재정과 능력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도록 준비하셔서 그 일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지요. 고넬료가 주 앞에서 기도할 때 그에게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의 문화로 볼때 베드로가 이방인인 자신에게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합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고넬료가 보낸 사람이 도착하기 전에 베드로가 그의 초청에 응답할 수 있도록 마음을 움직이셨지요. 이처럼 우리가 할 일은 다 하면 나머지 일들은 하나님께서 다 준비하실 거라고 믿어야 합니다. 순종하고 의지하면 주께서 반드시 역사할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요나서 안에는 하나님 나라는 언제나 세컨찬스가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3장 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두 번째’라고 하셨을까요? 첫 번째 말씀에 불순종해서 요나가 정반대의 길로 갔었지만 그가 큰물고기 속에서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 두 번째라고 말한 것은 항상 두 번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 번째도 두 번째요, 네 번째도 두 번째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의 우리의 죄와 실수로 우리의 삶을 끝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키면 언제나 ‘또 다른 기회’를 주셔서 주님의 나라를 섬기게 하시는 것을 잘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의 심판을 계획하셨지만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키자 심판을 취소하시면서 다시 기회를 주신 것만 보아도 알 수가 있습니다. 지혜의 하나님은 강퍅한 선교사인 요나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여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역사 안에서 전무후무한 회개 운동이 니느웨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니느웨 왕은 회개할 때 자기만 회개한 게 아니라 모든 신하와 백성들, 심지어 어린아이들과 짐승들까지 다 금식하며 회개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렇게 나라 전체가 회개에 동참한 일이 세계 역사에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요나서 안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정말로 마지막 때 우리가 주 앞에 전심으로 나아가 회개한다면 주께서는 어떠한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설령 심판에 있다 할지라도 다시금 돌이키게 하여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안에는 언제나 절망은 없고 오직 소망만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주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면 언제나 우리 가운데 소망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나라 안에는 항상 기회가 있습니다. 아무리 큰 실수로 죄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언제나 또 다시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항상 붙잡고 사시는 우리가 되도록 하십시다.
<홍성건 목사님의 말씀관통 100일 통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