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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애가-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베푸심

예레미야애가를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이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주전 3세기까지 전하여지는 강력한 이론은 예레미야라는 것입니다. 또한 70인역 성경은 예레미야애가를 번역하면서 1장1절을 시작하기 전에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가고 예루살렘이 황폐화되자 예레미야가 앉아서 울며 아래와 같이 말하면서 애곡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패망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에 의해 기록된 것이 분명하며 예레미야가 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내용 면에서도 예레미야애가는 예레미야서와 유사점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애가는 예레미야서의 부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예레미야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이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그것들이 얼마나 정확하게 성취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예레미야가 재앙의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여러차례 표현한 것이 진심이었고, 그날을 생각할 때마다 그의 마음이 몹시 쓰라리고 아팠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벨론에게 빨리 항복하고 포로로 가는 것이 더 좋다는 예레미야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를 이스라엘의 멸망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애가에 그가 진정으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사람인 것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유다가,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겪는 예레미야의 슬픔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재난을 멀리서 미리 보고 지은 게 아니라, 그것이 닥친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경험하면서 기록한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의 기록 목적은 그래서 죄로 말미암아 멸망을 당하는 예루살렘, 하나님의 백성들의 반역, 이로 인한 선지자의 슬픈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재앙들을 보며 차라리 그의 머리가 물이 되고, 그의 눈은 눈물의 근원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재난이 막상 닥치자 예레미야는 깊은 슬픔에 잠깁니다. 1장 1절과 2장 1절, 그리고 4장 1절에 “슬프다”라는 고백으로 애통함을 표현했지요. 또한 1장 9절에 “여호와여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 1장 20절과 2장 20절에 “여호와여 보시옵소서”라고 거듭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원수들은 그가 변절하여 조국을 배신했다고 비난했지만 예레미야애가를 통해 그에게 누구보다도 나라와 민족을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의 구성은 매우 독특합니다. 다섯 장으로 되어 있는데 5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22개의 히브리어 알파벳과 동일한 순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1장은 22절로 되어 있는데, 각 절마다 히브리어 알파벳의 첫 단어를 사용합니다. 첫 번째 절은 ‘알렙’, 두 번째 절은 ‘베트’ 이런 식으로 각 절마다 히브리어 알파벳을 첫 머리에 넣으면서 22절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3장은 특별히 66절로 3배가 기록되어 있는데, 세 절을 한 묶음으로 해서 그 첫 절을 알렙, 다시 두 번째 세 절을 또 묶어서 첫절을 베트, 이런 식으로 모두 22개 알파벳이 각 3절씩 묶인 66절로 구성했습니다. 5장은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묶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1장과 2장과 4장처럼 22절로 구성되었습니다. 처음 넉 장은 시 형식이고, 마지막 5장은 산문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시편 119편도 이와 동일한 구성입니다. 8절을 한묶음으로 매 8절의 첫 번째 절을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시작하여 모두 8절씩 22개로 묶은 것이지요. 이러한 구성은 내용을 기억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또 애곡을 위한 단가들을 쉽게 암기하도록 도와줍니다. 이러한 구성은 당시에 시를 쓰는 데 익숙한 방식이었습니다.

이 애가는 고난 가운데 있던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매우 유익했습니다.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영적인 언어를 제공했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다음 세대들에게도,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시온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보존하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그들은 이 애가를 통해 죄에 대해서 애곡하고, 하나님을 향해서는 회개하는 마음을 배워갑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장차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이라는 소망으로 힘을 얻게 해주는 것이 애가의 큰 역할인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가 겪는 고난들에 대해 올바른 슬픔을 갖도록 도와줍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북한에 고난받는 형제들의 깊은 고통에 대해서 함께 참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예레미야애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홍성건목사님의 말씀관통 100일 통독 중에서>